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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 밤, 이불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유튜브를 보고 있다. '자야지'라고 마음먹은 게 이미 한 시간은 훌쩍 지났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며 느낄 피로감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유튜브는 내게 '이것만 보고 자라'며 계속해서 흥미로운 영상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어떤 청년이 길거리 담벼락을 3d펜으로 수리하는 영상이 보고싶을 때까지.

01. 담벼락을 3d펜으로 수리하는 영상이 2700만 조회수를 기록하다

영상은 27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당시 10만 구독자 규모의 사나고를 270만의 대형 유튜버로 만든 계기가 됐다. 사나고는 영상에서 3d펜을 챙겨 집 근처 아파트의 부서진 담벼락을 메꾼다. 그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시민과 대화도 하고, 잡생각도 하고, 유머도 던진다. 4분여 남짓의 길지 않은 타임라인, 툭툭 던지는 유머, 듣도 보도 못한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매력적인 영상이다.

이 영상은 한국뿐만아니라 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댓글창에는 영어부터 스페인어, 일본어 등 외국어 댓글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들 모두 '내가 왜 새벽 두 시에 어떤 한 한국인이 담벼락을 수리하는 걸 보고 있는 거지'에 답을 할 순 없지만 영상을 즐겼다.

아무도 이 영상을 검색해서 들어오지 않았다. 3d펜을 좋아하거나 뭔가 만드는 걸 취미로 가진 사람에게 이 영상이 추천됐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만드는 건 커녕 만드는 걸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이 영상은 왜 추천된 것일까.

02. 유튜브 알고리즘의 작동원리

유튜브의 성공은 추천 알고리즘에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전체 시청의 70%는 추천 알고리즘에서 발생한다. 물론 유해성, 필터링 등의 문제는 있지만 시청자의 이용률 측면에서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목적은 명확하다. 시청자가 유튜브에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늘리는 것.

이에 따라 유튜브 알고리즘은 두 가지 기준으로 영상을 선택한다. 첫 번째로 영상의 퍼포먼스다. 조회수, 시청시간 등의 여러 지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영상은 추천 알고리즘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 번째는 시청자의 관심 범위다. 시청자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영상을 추천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영상의 퍼포먼스보다 시청자의 관심범위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 관심범위에 부합하는 콘텐츠는 다른 어떤 지표보다 확실한 성공:더 오랜 시청시간을 보장한다. 구글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시청한 설문조사 응답자 중 60%가 넘는 사용자가 시청한 동영상이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시청자의 관심사는 영상의 퀄리티보다 1.6배 더 중요하다

Google과 Omnicom Media Group이 공동 수행한 'Personal Primetime' 조사

03. 사나고 콘텐츠맵

유튜브 알고리즘은 시청자의 관심범위에 부합하는 카테고리의 영상을 추천한다. 현재 유튜브는 알고리즘의 공식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나고의 카테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연관 동영상을 살펴봤다.

사나고의 콘텐츠맵을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계정은 일반적인 관심범위를 가져야했다. 특정 카테고리의 영상만 추천되는 것을 피해야했다. Vpn을 이용하여 미국 지역의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고 3일간 인기 동영상의 1-10위 영상을 시청하여 일반적인 시청 히스토리를 만들었다. 이후 사나고의 담벼락 수리 영상을 검색하여 시청했다. 연관 동영상으로 추천되는 영상 중 사나고 채널을 제외하고 크롤링했다. 중복 채널을 제외한 40개의 채널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여 그래프로 만들었다.

사나고 채널의 연관 채널은 창작, 게임, 테크&사이언스, 필름메이킹, HowTo 순으로 많았다. 이는 사나고의 콘텐츠가 잘 분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창작은 3d펜, 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창작하는 영상 카테고리로 38%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이 두 번째 카테고리로 등장하는 것은 사나고가 다른 영상에서 게임을 소재로 창작하는 영상이 많을뿐더러 창작과 게임 두 카테고리의 선호도가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4위인 film 카테고리에서는 영상제작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에 특정되어 추천됐다. 이를 볼 때, 애니메이션, 게임, 창작 카테고리가 인접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3위와 5위인 HowTo와 Science&Tech는 3d펜이라는 주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순위권 밖으로 코미디, 영화, 노래 카테고리의 영상이 추천됐다. 이는 실험을 위해 만든 다른 계정(다른 분야의 영상을 시청함)에도 추천됐기에 관심범위에 상관없이 추천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콘텐츠맵으로 살펴본 사나고의 채널은 명확한 카테고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시청자의 관심사 우선이라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기준을 따르면 사나고 영상이 광범위하게 퍼졌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언어 또한 영상의 도달범위를 제한하는 큰 요인이다. 한국을 넘어 외국인들에게 까지 이 영상이 추천됐다는 것은 다른 설명을 요구한다.

04. 영상의 관심범위를 확장하는 방법: 참조

사나고 콘텐츠맵을 만들기 위한 크롤링 중 흥미로운 영상이 등장했다. 사나고처럼 3d펜으로 집벽을 수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보전달형 HowTo 영상이다. 콘텐츠만으로는 사나고와 동일하므로 이 두 영상은 연관 동영상으로 묶였다. 그러나 같은 주제임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부합하는 관심범위가 훨씬 작은 대신 특정 관심범위의 시청자 집단에게 확실하게 추천된다.

반면 사나고의 영상은 부합하는 관심범위가 굉장히 넓다. 사나고의 영상은 제작 과정과 함께 주변 풍경, 사람들과의 대화 등 일상의 모습을 비춘다. 그 안에서 등장하는 길거리 담벼락은 그저 수리하고 고쳐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부서진 담벼락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은 스쳐지나가는 일상이라는 대중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주제는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유머 사이에 숨겨져 더 매력적으로, 시청자는 일상 속의 자신만의 담벼락을 떠올린다.

사나고는 영상에서 담벼락을 창작 카테고리에 제한하지 않고 새로운 주제에 연결시킨다. 이는 참조의 형태다. 참조는 정보의 위치를 담은 데이터로서 자료간의 연결을 만든다. 출처에서 참조는 이 정보가 다른 문헌의 어디서 등장하는지를 설명한다. 컴퓨터 과학에서도 참조는 같은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은 참조를 통해 원본 데이터에 직접 접근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다.

바로가기는 참조형 데이터다.

참조의 핵심은 다른 자료간의 간접적인 연결에 있다. 참조를 이용하면 유튜브에서 영상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관심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사나고의 영상에서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는 '부서진 담벼락을 수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새로운 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이를 대입한 대상(부서진 담벼락)을 다룬다. 창작 카테고리와 3d펜이라는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영상의 관심범위를 확장한다.

05. 좋은 참조의 조건

관심범위를 확장하는 효과적인 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참조가 연결하는 대상은 대중적이어야 한다. 참조의 목적이 관심범위의 확장이라면 참조의 대상은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것이어야 한다. 사나고는 영상에서 '일상의 돌봄'을 참조했다. 만약 대한민국 아파트의 특성 같은 좁은 주제를 사용했다면 영상의 관심범위가 외국에까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로 참조를 받는 대상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일상의 돌봄'이라는 주제를 참조하기 위해 일상 풍경만을 보여주는 영상을 가정해보자.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주제를 흐릿한 하늘에 담아서는 전혀 흥미를 일으킬 수 없다. 사나고의 영상이 특별한 것은 '길거리 담벼락을 3d펜으로 수리'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주제에 생동감(유튜브 알고리즘이 뽑아내기 쉬운 특징들)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구체적이지 않은 참조는 명확한 연결을 가질 수 없다.

좋은 참조의 예시로서 베트남 전쟁 당시의 지포라이터를 복원하는 영상이 있다. 이 영상도 26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광범위하게 퍼졌다. 시청자는 녹이 선 라이터를 복원하는 과정보다 그것이 베트남 전쟁때의 물건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라이터의 녹을 지워내면 'War stop people. So why don't stop war'라는 문구가 나온다.

좋은 참조는 영상의 카테고리와 시청자의 관심범위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위 영상은 사나고의 영상처럼 복원, 창작이라는 명확한 카테고리를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주제를 참조하여 도달범위를 넓힌 사례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지포라이터라는 대상을 이용하여 전쟁의 아픔, 평화이라는 주제를 참조했다. 주제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만으로 영상이 추천되는 시청자의 관심범위를 효과적으로 확장한다.

06. 사나고가 좋은 참조를 찾은 방법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만 관심을 준다.' 사나고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부서진 담벼락을 채우며 말한 내용이다. 그는 담벼락을 발견했고 그것을 수리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3d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의 영상을 즐겼다. 사나고는 어떻게 길거리의 담벼락을 3d펜으로 수리할 생각을 했을까. 시청자가 관심범위 밖의 영상도 보게만드는 좋은 참조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벽의 사소한 균열이나 부서짐에 무관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자연스러운거니까요.
사람들은 관심이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_사나고

유튜브를 볼 때 우리는 오로지 '흥미'만을 생각한다. 주제, 형식, 유튜버에 상관없이 영상이 흥미롭다면 그 영상을 따라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영상으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 한 청년이 길거리 담벼락을 3d펜으로 수리하는 영상까지 닿는다. 흥미를 따라가는 비용은 단 한 번의 클릭과 잠깐의 광고 시청이다(유튜브 프리미엄을 쓴다면 월 7,900원에 무제한 흥미를 따라간다.) 유튜브에서 흥미를 따라가면서 유용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해야할 것 같은 원데이 클래스, 뭔가 멋져보이는 피아노 같은 취미, 직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30일 격파 코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흥미를 느끼는가의 기준만을 따른다.

효율을 따르지 않는 흥미는 관심범위를 확장한다. 사나고는 자신의 작업을 비효율의 예술(art of inefficiency)라고 말한다. 5분 남짓의 영상 뒤에는 수십시간의 제작 과정이 있다. 그 수고가 아깝다고 느꼈으면 그는 아파트 담벼락을 절대 채우지 않았다. 사나고는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는 데 생산성과 효율을 따지지 않고 흥미를 따라갔다. 그의 첫영상은 유명 스트리머 우왁굳의 팬영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시작한 그는 아파트 담벼락을 수리하는 데까지 닿았다. 사나고의 이름 앞에는 항상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작가'라는 명칭이 따른다.

좋아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제 발로 걸어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이 더 세심하게 보려고 애써야 생기는 겁니다.
_ JOBS - EDITOR(에디터 :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매거진 B 편집부

사람은 자신이 관심있는 것에만 관심을 준다. 그러나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점점 넓혀가다보면 다른 사람의 관심범위와 연결되는 지점까지 닿는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 좋아하다보니 어느 순간 빛나는 지점. 그곳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 주제, 메시지와 만난다. 유튜브를 보듯 오로지 자신의 흥미만을 길잡이삼아 갈 때 닿는 곳이다. 더 자유분방하고 더 엉뚱하게. 어느 순간 길거리 담벼락을 수리하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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