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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방 안에 칩거하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이들은 어둠 속의 괴물처럼 묘사된다. 위험한 정신병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내재한 범죄자가 먼저 떠오른다. 또는 사이버 세상에 매몰되어 방구석에서 킥킥대는 사회적 루저, 오타쿠, 게임 중독자의 이미지가 있다. 혼자만의 세계와 환상 속에 사는 이들을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들다.

 

히키코모리를 다룬 영화 김씨표류기 (인스타그램 @mood_diaryy)

 

01. 히키코모리는 자신을 직시하지 못한다.


히키코모리는 어둡고 기괴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히키코모리가 되는 원인은 정말 다양하다. 학창 시절의 따돌림, 취직의 실패나 해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같은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대표적이다. 혹은 일본의 경우와 같이 사회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 발달 과정이나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이 돌연 칩거하기도 하며 어릴 때부터 폐쇄 상태로 몇십 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히키코모리와 자화상, 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세 습작, 프란시스 베이컨


히키코모리의 가장 큰 특징은 장기적인 사회적 단절(social withdrawl)이다. 히키코모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리고 거의 매일 개인 공간에, 일반적으로 자신의 침실에 갇혀 있는다. 사회적 상황과 대인 관계를 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밤에만 방을 나가기도 하며 보통 인터넷, 비디오 게임,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원인, 발달, 상태, 결과가 다르니 학계에서는 히키코모리는 정신병이라기보다 사회적 상태로서 해석하기도 한다. 히키코모리로 판단되는 사람은 다음 6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 미국의 정신병리학 저널(J Nerv Ment Dis)에 발행된 문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히키코모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1) 매일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낸다.
2) 사회적 상황(학업, 근무)과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3) 사회적 단절로 인해 개인의 일상, 사회적 활동(직업 또는 학업), 대인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
4) 사회적 단절의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5) 만 18세 미만이고 사회적 단절의 기간이 6개월 이상이다.
6) 소셜 포비아, 우울증, 조현병 또는 회피적 인격 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 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

*2010년 논문이기에 5번의 만 18세 미만을 명시하는 조항은 잘못되어 보인다. 현재 일본에서는 40대 이상의 히키코모리도 다수 파악되고 있다.

4번 조항을 보면 (히키코모리는) 사회적 단절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히키코모리는 자신의 공간에 칩거하는 이유는 편안함이 아니다. 은둔형 외톨이 DC 갤러리, 네이버 히키코모리 카페, 유튜브 등의 커뮤니티를 보면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벗어나려고 한다. 혹은 적어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고, 노는 게 노는 게 아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도망가고 있다. 무엇으로부터? 자아로부터.


"깨어있는 시간의 90%는 계속 컴퓨터만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나 자신을 직시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더 몰두한 것도 있어요.”
_ 한 히키코모리의 고백

 

 

히키코모리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지 걱정한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 한 캔을 사는 것도 무서워하며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화장실도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피하고 싶은 것은 일그러지고 괴상망측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 들어가 자아를 내려놓는다. 커뮤니티나 철학, 애니메이션, 게임 등 무엇이 됐든 간에 자신을 직시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 하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02. 히키코모리, 유튜브라는 창을 통해 세상에 나가다.

 

히키코모리지만 유튜브를 통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내고 구독자와 소통한다. 모두가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쳐쓰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건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1) 히키코모리 탈출기, 유튜버 삐웅

 

블랙넛 100, 출처: 히키코모리 탈출기

 

채널명 '히키코모리 탈출기'를 운영하는 유튜버 삐웅은 랩을 굉장히 잘한다. 그가 올린 블랙넛의 100 커버 영상은 60만 조회수를달성했다. 수줍은 태도로 수줍지 않게 랩을 하는 그를 보면 히키코모리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는 오랫동안 심한 아토피를 앓고 있다. 한 쪽 눈의 시력이 저하되는 등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사회적 단절 상태에 들어갔다. 벗어나야겠다는 결심 후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병의 악화나 스트레스로 인해 갑자기 잠수를 타는 일이 빈번한 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독자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삐웅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항상 돌아왔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삐웅의 말이다. 4년 전부터 구독하며 지켜본 삐웅은 강한 사람이다. 그가 영웅적인 의미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자신의 역경과 고통을 이겨낸 승리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넘어지고 힘들어하고 울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때때로 라이브 방송에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까지 살아있다. 부끄러울 수 있는 자신의 부족함과 고통에 대해 말하며 드러낸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을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기 위해서는 더욱더. 누군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편한 조건으로 자신의 꿈을 향하여 멋지게 달려가는 삶을 산다. 그러나 누군가는 남들보다 유난히 힘든 조건 속에서 살아가며 겨우 한 발짝씩 앞으로 옮기는 삶을 산다. 비참하고 더러운 생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고통에 함부로 이름 붙여 편한 대로 해석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두는 것.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용기. 

 

한나 아렌트는 '용기의 진짜 의미는 기꺼이 행위하고 말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아렌트에게 행위와 말이란 단순히 행동, 표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적극적으로 세상에 참여하며 자신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렌트의 시선에서, 삐웅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감한 일이다. 


삐웅은 현재 아프리카 티비에서 방송하면서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방송국은 '삐웅2', 매일 12:00~16:00, 18:00~23:00 사이에 한다. 방송에서 고민을 말하고 듣고 나누고 있다. 

 

2) 1인 히키코모리 다큐멘터리, 유튜버 금식딸

 

유튜버 금식딸에게는 히키코모리 답지 않게 굉장히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부정적인 금식딸과 다르게 청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희망의 말을 담는 긍정적인 친구다. 그 친구는 금식딸과 일상을 공유하고 감정과 생각을 나누며 응원하고 지지한다. 금식딸도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금식딸이 비만, 폭식, 대인 기피증 등으로 힘들어하는 걸 보며 그녀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이 채널은 금식딸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면 속의 히키코모리와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친구는 모두 금식딸이다. 금식딸은 내레이션의 그녀를 열정적이고 이상적인 자아로서 긍정한다. 반면 히키코모리로서의 자신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금식딸은 화면 속의 자신을 견디기 힘들다. 살도 찌고 자신감도 없고, 집으로 찾아온 부모님의 얼굴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그녀는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다. 금식딸은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하고 가까운 곳이라도 외출하며 노력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2019년 1월 2일에 유튜브를 시작하여 금식딸은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1달간 7개의 영상을 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2월 1일 영상을 올리고 9개월 동안 잠적한다. 그리고 '스트레스성 폭식, 반복되는 악순환... 그런 너를 잊으려 했으나...'라는 영상에서 다시 히키코모리 생활로 돌아간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다시 혼자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예전처럼
그러지 않길 바랬는데...
아무리 내가 소리치고 좋은 말을 해도
그녀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들어간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은 
그녀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렸을 때 마주한 것은 결국 어둠뿐이었다. 그녀는 미운 자신을 잊으려 했다. 유튜브를 시작하며 두 자아의 간극은 더 커졌다. 내레이션의 금식딸과 달리 자신은 부정적이고 한없이 무기력하다. 

 

돌아간 어둠 속에서 그녀는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9개월의 긴 대화를 통해 금식딸은 어둠 속의 자신이, 나레이션의 그녀만큼이나, 금식딸을 아끼고 사랑함을 깨닫는다. 그녀에게 힘들고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안식처가 되어준 사람이다. 금식딸이 빛으로 나아가도록 어둠 속에서 그녀의 등을 지지하고 있었다. 나레이션의 말처럼 금식딸이 '스스로 들어간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은 그녀가 외면했던 그녀 자신이었다.


금식딸은 이후 다이어트 챌린지와 제주 여행 등의 콘텐츠를 진행했고 2019년 12월 1일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많은 이들이 금식딸과 그녀의 친구를 기다리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03. 2인칭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히키코모리는 거울 앞에 선 자신을 괴물로 보기에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길 두려워한다. 일반적인 사회관계에서 사람의 자아상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인칭으로 보는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3인칭으로 보는 자신을 조화롭게 혼합한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법을 잊은 히키코모리는 타인의 눈에 비친 괴물을 먼저 본다. 

반 고흐의 자화상에서

 

히키코모리에게 유튜브는 정상적인 자아상을 찾는 좋은 출발점이다. 유튜브에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느니, 자존감을 높인다느니, 그런 멍청하고 추상적인 이야기 아니다. 영상 밖의 '나'는 영상 속의 '나'를 본다. 이때 타인과 시선을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가 동일하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확인한다. 이러한 추상적인 과정을 유튜브를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게다가 유튜브는 현실보다 관계의 충돌이 적어 자신을 드러내기 좋은 공간이다. 현실과 달리 유튜브를 통해 맺는 관계는 단방향이다. 이러한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는 실제 관계에서 사람들이 겪는 여러 문제를 비껴간다. 눈 앞에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기에 관계를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적다. 또한 감정 측정 AI 회사인 Affectiva에 따르면 유튜브 상 관계에서도 사람은 실제 관계와 동일한 만족감을 느낀다. 이러한 장점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완화한다. 따라서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네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갈 용기도 없는 걸 알아.

그러니까 일단, 인터넷 세상으로 사람들에게 너를 노출시키는 거야.'

_ 금식딸


그러나 유튜브의 단방향 관계는 위험을 내포한다. 자이 인식이 부족한 사람은 유튜버는 가짜 자신을 만들기 쉽다. 이로 인해 유튜브에서 맺는 관계도 가짜가 된다. 누구나 멋있고 긍정적으로 보이길 바란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만들어진 자신에게서 위안을 찾다 보면 현실과 가상의 괴리에서 더욱 힘들어진다. 유튜브에만 존재하는 거짓된 자신을 전달하다가 망해버린 유튜버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봤다.

 

히키코모리가 자신을 괴물로 보는 문제와 유튜버가 가짜 자신을 만드는 문제는 이미지로 자화상을 그리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가상이다. '거울로 본 나(1인칭)'도, '타인의 눈에 비친 나(3인칭)'도 모두 이미지다. 증명할 수 없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든 관계는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다. 

 

진실된 관계를 위해선 2인칭 시점으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2인칭 시점은 실제적인 조건이라기보다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당신은 사과가 먹고 싶다'와 같은 문장으로 나타나는데, '당신'이란 2인칭 명사는 그 자체로 관계를 나타낸다. 내 앞에 있는 당신. 2인칭 시점으로 본 자신은 내가 볼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내 앞에 있기에 '당신의 눈으로 본 나'는 분명 존재한다. 2인칭으로 본 자기자신은 구현하고 증명해야 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나타나 있는 관계다.

 

you + tube

2인칭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은 '나'가 '당신'에게 묶여있음을 안다. 내가 '나'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나'를 괴물로도 영웅으로도 만들지 못한다. 살펴본 두 명의 유튜버는 각각 자신의 고통과 어둠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일부라면 자신을 보는 당신(구독자)에게 묶여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유튜버에게는 '나'밖에 없다. '너'에게 묶여있지 않기에 자유롭게 자신을 만들어낸다. '나'가 '너'에게 있을 때, 유튜브는 당신 you의 이미지를 비추는 TV를 넘어 당신 you에게 향하는 관계의 통로 tube가 된다.

 

04. 히키코모리가 관계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

 

 

성과사회에서 지친 현대인에게 인간관계는 버거운 짐이다. 나 하나 고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꼭 사람과 관계를 가져야 해?'라는 물음이 생긴다. 만일 자급자족할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닫고 사는 히키코모리의 생활이 괜찮아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를 더 소중히'와 '하지 않음'이 트렌드다. 여러 에세이가 적당히 자조적인 목소리로 쿨-하게 나만의 삶을 사는 모습을 전한다. 백만장자의 꿈보다 소소한 행복을 지키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환상이 훨씬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는 20세기의 아메리칸 드림이 변형된 21세기 버전일 뿐이다. '내 꿈의 주인'에 지친 현대인을 위해 매체는 '나의 주인'이라는 새로운 꿈을 펼친다. 나의 주인으로서 있기 위해 삶에서 불확실한 모든 것을 제외해야 한다. 자유를 위해 희생된 것 중에는 타인과의 관계도 포함된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현대인이 꿈꾸는 자유를 '완고한 자기 충족과 자기 지배의 이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삶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자유는 결과의 지배가 아니라 의지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자기자신을 의존하거나 자신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자유와 '타인과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로 살기' 위해서 '너'가 필요하다. 히키코모리는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기 위하여 자기자신으로 살 자유를 포기했다. 하지만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 속에 담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세계와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홀로 있는 당신에게 우리가 필요하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로 있기 위해서, 당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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