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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꿈과 눈물과 행복

Junu_franco_moon 2020. 7. 18. 18:03
세계는 단지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불과하다고한 쇼펜하우어의 말은 맞아
그는, 이런 세계에 태어나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기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사실 행복은 우리가 안간힘을 다해 만들어내는 허구이고,
불행은 우리의 원칙적인 조건이며 
삶이란 끊임없는 무화되는 무상함이지

그러니 생의 조건에 휘둘리지도 말고, 허구를 위해 너무 노력하지도 마
불만의 마음을 접고 주어진 것에 수수하게 살며 그 속에서 너의 정신의 주인이 되기를 바랄뿐

그리고 비밀을 간직해
감정의 움직임은 모두 비밀로 하렴

사랑도 지성의 형태로 교감하기를
나는 네가 행복한 척하며 웃어대기보다는
시詩처럼 신선하고 아름답게 살면 좋겠어

_시詩처럼, 전경린

 

00. 꿈처럼


작업을 위해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문득 '네가 꿈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분명 어디선가 읽었는데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안나 한참 인터넷을 뒤적였다. '꿈처럼 신선'이었나, '눈물처럼 아름다운'이었나, 단어를 달리해가며 검색해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책의 작가가 문학과 교수였다는 단서가 있었다. '문학과 교수 꿈처럼'에서 "교수"에 쌍따옴표를 넣어 필수 검색 단어로 지정하여 검색해봤으나 역시 찾지 못했다. 

 

고흐의 색채를 닮은 그림을 그리는 cycy님의 그림 (인스타그램 @cho.rr)


그러다 군대에서 읽었던 책 중에 하나일 것 같아 알라딘에 들어가 옛날 구매목록을 뒤져 장영희 교수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책을 찾아냈다. 분명 여기에 있었다. 장영희 교수를 넣어 다시 검색해봤으나 색인 목록에 없었다. 그래서 ebook으로 구매하여 책을 뒤적였다. '꿈'으로 검색했으나 찾는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꿈을 꾸되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라는 문구가 있었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미드 키플링이 그의 아들에게 헌사한 시에 있는 문장이었다. 

 

내가 문장을 찾아 무엇을 얻으려하는지 모르겠지만, 장영희 교수의 책에서 나온 문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키플링에게 꿈은 고고하게 아름다운, 손을 뻗어 성취하는 것이다. 고고하게 아름다운 것은 노예의 사고와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더 고고하다. 

 

그러나 내가 찾으려는 문장은 '꿈-아름다움-신선-눈물'이다. 꿈은 눈물이다. 눈물은 아름답고 그래서 꿈이 아름답다. 내게 꿈은 고고해서가 아니라 볼을 타고 땅으로 떨어지는, 떨어지는 아름다움이다. 허탈했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며 다시 한 번 문장을 켰다.

그리고 '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네가 시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켜졌다. 불 붙지 않은 담배 개피를 도로 집어 넣고 성급히 노트북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경린 시인의 '시처럼'이라는 시를 찾아냈다. 내가 이 시를 어디서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차분히 한 문장씩 읽어나갔다.

행복은 허구이며 불행은 당연하며 삶은 무상하다는 회의주의적 말이 가슴을 웅키게 했다. 행복을 위해 너무 애쓰지말고 자기 정신의 올곧은 지배자가 되라는 말은 내가 찾던 문장이 아니었다. 키플링의 아메리칸 드림도 내가 찾던 꿈이 아니었지만 전경린의 행복이란 패배주의적 꿈(허구)도 거부감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전경린에게 행복이란 번쩍대는 시끄러운 불빛이고 반대로 시는 허구 속에서 빛나는 신선한 아름다움이다. 불행의 조건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시야말로 진정으로 추구할만한 것이다. 여기서 시는 꿈과 행복의 반대말이다. 그러나 내게는 꿈은 아름다움이고 그래서 시다. 꿈과 시는 불행의 조건이나 행복의 허구성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문장을 완성한다.

 

'나는 네가 행복한 척하며 웃어대기보다는 시처럼 신선하고 아름답게 살면 좋겠어.' 


내게 꿈은 아름답다. 그리고 눈물도 그러하다. 그래서 꿈은 시詩다. 내가 추구하는 꿈은 하늘에 달린 꿈이 아니다. 홀로 고고하지 않다. 반대로 전경린이 시에서 드러내듯이 꿈은 행복과 세계에 대한 패배의 상징도 아니다. 꿈은 시의 반의어이자 행복과 동의어가 아니다. 내게 꿈이란 추구-상승-할 만한 것이며 동시에 그 상승으로 인해 내가 하강할 수 있는 눈물이다. 

 

01. 시처럼

내가 찾던 것은 꿈(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삶의 복잡한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움을 무시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모든 초점을 맞추면 삶은 그만큼 단순해지고 무채색이 된다. 하나의 현상에 하나의 해석밖에 남지 않는다. 

 

찾던 문장을 장장 두 시간을 이 한 문장을 찾아 헤맸다. 이를 위해 장영희 교수의 책을 샀으니 8560원+두 시간 짜리 문장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요즘이다. 어떻게든 다시 길을 찾아 걸어가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고 있다. 행복, 우울과 같은 감정이나 성공과 좌절 같은 인식을 제쳐놓고 조용히 문장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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