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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은 'Mukbang'이란 단어로 전 세계에 퍼졌을 만큼 대중적인 콘텐츠다. 먹방이 처음 대중에게 소개되었을 때는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아프리카 BJ가 엄청난 음식을 쌓아 놓고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 장면은 더럽고 역겨웠다. '먹기'는 너무 원초적인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해외의 반응도 먹방을 한국의 괴이한 문화로 봤다. 그러나 현재 유튜브에서 먹방은 누구나 즐기는 콘텐츠다. 먹방이 소수의 취향에서 대중의 콘텐츠로 자리잡기까지 어떤 욕망을 대변해왔는지 그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01. 유튜브 최초의 Mukbang은 한국인이 아니다.

유튜브 최초의 Mukbang은 Simon Stawski가 2015년 4월 올린 먹방과 한국의 푸드 포르노 슈퍼스타(Mukbang and Korean Food Porn Superstars)라는 영상이다. 그는 캐나다 사람으로서 2008년에 한국에 왔다. 자신의 채널에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려왔고 이 영상도 그중 하나다.

시몬은 아내인 마르띠나(Martina)와 함께 영상을 연다. "자,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우리가 먹는 모습을 방송할거야'라며 웃는다. 당시 먹방은 한국에서도 그렇게 대중적인 소재가 아니었으니 외국인들에게 밥을 먹는 영상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시몬은 보쌈, 오리구이, 김치전 등을 먹는다.

그는 영상에서 단순히 먹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먹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말한다. 아프리카 TV에서 BJ가 먹방을 하며 시청자와 교류하고 별풍선을 받는 모습을 설명한다. 시몬에게는 한국인은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도 어떻게 살이 찌지 않는지가 의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왜 먹방이 흥행 이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시몬: 혼자서 밥을 먹을 때 같이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거야. 한국의 식문화는 음식에 집중하기보다 하나의 소셜 이벤트에 가깝고, 혼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니까.

시몬의 의견은 혼밥문화가 이제 막 태동하던 2010년 초중반의 한국의 상황에 잘 부합한다. 이에 반해 그의 아내 마르띠나는 다른 의견을 말한다.

마르띠나: 사람들은 BJ가 엄청난 양을 먹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야. 나만해도 그걸 보면서 어떻게 저걸 다 먹는지 f* 신기하단 말이야.

먹방을 보는 이유에 대한 시몬과 마르띠나의 대화는 먹방에 대한 학계의 대표적인 두 입장과 똑같다. 먹방이 개인화된 사회에서 관계를 향한 사회적 욕구를 반영하는지, 또는 '먹기'라는 원초적 욕망의 대리 충족이냐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신자유주의를 언급하며 억눌린 욕망의 병리적 표출이라던지, '먹기'의 원초적인 생명의 의미가 데이터로서 취급되는 생명자본주의(Biocapitalism)라는 의견이 있다.1

02. 유튜브 먹방의 역사

아프리카TV와 같은 방송 플랫폼에서의 먹방은 시몬이 말하는 소통 중심의 유형과 마르띠나가 말하는 괴식의 형태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플랫폼의 중심이 유튜브로 넘어오면서 과격하고 폭력적인 먹방은 점차 배제됐다. 소통을 중심으로 하는 '밴쯔', 일상을 보여주는 '왕쥬'와 같은 아프리카 BJ들이 자신의 채널에 방송 영상을 올리면서 유튜브 먹방 시대가 시작된다. 'Mukbang'은 시몬이 처음이지만 '먹방'은 이러한 1세대 먹방 유튜버가 시작했다. 이들은 영어 자막을 넣기도 하는데 먹방이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상승세 이후 인기를 유지하던 먹방은 2017년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양과 소통보다 음식이나 컨셉을 내세우는 콘텐츠 중심 먹방 전문 유튜버가 등장한다. 매운 음식을 콘텐츠로 한 '도로시', 리얼 사운드 먹방을 내세우는 '홍사운드', 먹방과 요리를 결합한 쿡방의 '요남'이 대표적이다. 물론 아프리카의 소통 중심 형식을 잇는 슈기, 떵개떵과 같은 2세대 먹방 아프리카 BJ도 인기를 끈다. 작은 체구의 엄청난 대식가 '쯔양'은 엄청난 속도로 골드 버튼을 받는다.

또한 외국인 시청자의 대거 유입이 일어난다. 먹방의 글로벌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는 먹방 ASMR이다. 소통이 아닌 먹기의 감각을 극대화환 ASMR형식의 '제인 ASMR'은 현재 1000만 명의 구독자를 달성했다. 먹방이 유난히 인기 있는 지역은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는 K-Pop과 같은 한류의 인기와 맥을 같이한다. 이어 스웨덴, 노르웨이의 북유럽과 캐나다, 미국의 북미가 먹방을 많이 찾는 지역이다.

좌) 쯔양 우) Jane ASMR

현재 먹방은 아프리카 BJ나 전문 유튜버의 콘텐츠가 아니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다른 장르의 유튜버나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반 유튜브 사용자도 먹방 브이로그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만든다. 먹기를 중심으로 일상을 재구성하는 먹방 브이로그는 진입 장벽이 낮기에 유튜버나 시청자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상이다. 이제 먹방은 대중화를 넘어 일상적인 소재다.

03. 인간 욕구 모델(Human Needs Model)

유튜브 공식 블로그에서는 유튜브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Susan Kresnicka의 인간 욕구 모델을 제시한다. 매슬로우의 수직적인 인간 욕구 모델과 달리 수잔의 인간 욕구 모델은 수평적이다. 자기 안정의 욕구와 사회적 연결 욕구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이는 모두 자아실현의 욕구를 구성한다.

먹방은 대중화된 만큼 ASMR부터 소통, 그리고 브이로그까지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와 결합됐다. 그만큼 먹방이 대변하는 욕망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이는 '먹기'의 원초적인 욕망부터 '식사'의 관계 지향적 욕망까지 포함한다.

04. 먹방과 ASMR

'먹기'를 통해 자신에 집중하고자 하는 먹방은 자기 안정(Self-care)의 욕망을 담는다. 이는 일본의 <고독한 미식가 孤独のグルメ>에서 잘 드러난다. 주인공 고로는 식사에 필요한 예절, 요리에 대한 지식이나 방법보다 오로지 '먹기'에 집중한다. 음식의 맛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주인공이 가게를 찾아 음식을 먹는다는 단순한 플롯을 유지한다.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제멋대로가 되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고고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활동이라 할 수 있다. _드라마 오프닝 내레이션

자기 안정 욕구는 유튜브에서 ASMR(자율 감각 쾌감 반응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주류 콘텐츠로 올려놓은 요인이다. ASMR 장르는 일상의 기분 좋은 자극들을 흉내 낸 소리인 트리거 trigger를 이용하여 안정감을 준다. 영국 셰필드 대학교와 맨체스터 대학교가 공동 연구한 논문은 ASMR이 심장 박동을 낮추고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고 기술한다2. 뇌를 쉬게 하고 감정을 완화함으로써 안정과 편안함을 준다.

먹방 ASMR은 서사를 배제하고 감각에 집중하는 ASMR과 '먹기'를 통해 원초적인 욕망으로 돌아가는 먹방이 결합된 장르다. 먹방 ASMR 장르의 포문을 연 사람은 유튜버 딕헌터다. 그는 '욕망의 먹방' 시리즈로 큰 호응을 얻었다. 사회적 제약이나 시선을 무시하고 먹는다는 욕망에 충실한 영상이다. 여기서 먹방은 소통이나 일상의 재현이 아니다. 연어를 통쨰로 들고 원시인처럼 먹는 모습은 생경한 감각과 원초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회적,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먹방을 하는 사람과 시청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딕헌터 욕망의 연어 먹방

05. 먹방과 브이로그

반면 아프리카TV부터 이어져 온 소통 중심의 먹방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식사 형태의 먹방은 시청자와 같이 있는 듯이 행동한다. 실시간 채팅을 통해 일상을 주고받고 음식 추천도 받는다. 이렇게 '네트워크의 가상성은 식사라는 일상성으로 희석되고 자연스럽게 혼밥이 아닌, 함께 식사하는 ‘함밥’ 문화가 형성된다.' 3

먹방과 브이로그가 합쳐진 먹방 브이로그는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중심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콘텐츠다. 단순히 먹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고 가게나 음식의 정보, 다이어트 팁을 공유하며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담는다. 이렇게 '먹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는 '식사'의 사회적 행위로 바뀌고 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생된 것이 카페 브이로그다. 2019년 9월 유튜버 조이의 영상으로부터 시작된 유행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호응을 얻었다. 단순히 카페에서 일하는 영상이지만 내레이션 없이 자막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함으로써 사회적 관계의 욕구를 충족한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당연시된 상황에서 이러한 욕구가 증대된 모습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3, 4월에 유행한 달고나 커피 챌린지 또한 같은 부류다.

Zoe 카페 브이로그

06. 먹방과 욕망

유튜브는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는 곧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리킨다. 유튜버가 시청자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잘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유튜브의 욕망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행복해야 한다.

한국에서 먹방이 대중적인 콘텐츠로 자리잡은 것은 한국인의 욕망을 잘 반영한다는 반증이다. 기초적인 인간의 활동인 '먹기'부터 '사회적 관계의 활동인 식사'까지 아우르는 콘텐츠다. 그러나 내가 먹으면서 행복하지 않다면 그걸 보는 시청자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청자가 행복해지지 않는 먹방은 유튜버로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문복희나 밴쯔 등의 먹방 유튜버의 먹뱉 사건은 결국 꼬리가 잡히고 끝이 났다. 이는 행복의 공유라는 유튜브의 기본 법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먹방을 위한 기본 원칙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다. 먹방은 먹는 즐거움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뒤틀리고 과장되거나 가장되어 거짓된 즐거움의 맛은 아무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딕헌터의 '욕망의 먹방'은 누구에게는 역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충실하게 원초적이고 그래서 거짓되지 않다. 또한 먹방 브이로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는 일상의 모습은 시청자에게도 소소한 행복을 자아낸다. 시청자에게도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 위해선 당신의 욕망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충실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당신의 욕망이 역한 가짜라면 시청자는 앞에서 먹고 뒤에서 뱉을 것이다.

구독자 5만명 유튜버 흥따의 먹방 브이로그에 달린 댓글




1) 김예란, "인간-기계-동물의 다양체," 커뮤니케이션이론, 제13권, 제1호, pp.94-134, 2017.
2) Hostler, Thomas J and Poerio, Giulia Lara and Blakey, Emma (2019)Still More Than a Feeling: Commentary on Cash et al., "Expectancy Effects in the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and Recommendations for Measurement in Future ASMR Research. Multisensory Research. pp. 1-11. ISSN 2213-4794
3)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9), 2020.9, 68-85 (18 pages) JOURNAL OF THE KOREA CONTENTS ASSOCIATION 20(9), 2020.9, 6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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